End of Year Retro 2024
두드러기로 고생하며 신년을 지나, 새로운 직장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. 이커머스 업계에서 오래 일했기에, 새로운 도메인은 모든 것이 생소했다. 하나의 제품을 완성하기 위한 재료와 그 여정은 엄청났다. 자동차에도 관심이 없었으니 트림, 외내장, 옵션 등도 생소했다. 줄임말로 표현되는 다양한 용어도 난해했다. 프로젝트 도중 투입되어 외주에서 껍데기만 만들어 놓은 기능들을 하나씩 정리하며 정신없이 상반기를 보낸 것 같다.
집에 와서도 쉴 수 없었다. 기술사 강의와 숙제, 블로깅, 코딩 등 여러 가지를 병렬로 진행하며 기계처럼 살았다. 디스크 재활을 통해 단련된 강한 멘탈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. 그렇게 시간을 녹이며 1년을 달리다가, 와이프가 예약해둔 여행 덕에 잠깐씩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. 시험을 앞두고 5일간 휴가를 내어 스터디카페에서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다. 그러나 합격 점수에서 4점이 부족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.
3분기에는 2024년 가장 큰 목표였던 Admission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. 이 과정은 도전의 연속이었다. 전 직장 팀장님과 교수님께 추천서를 영어로 요청했는데, 걱정과는 달리 모두 흔쾌히 수락해 주었고 좋은 선택이라며 격려해 주었다. 이어, 왜 공부를 원하는지 절절하게 적은 SoP를 작성해야 했다. 신분 증명을 위한 문서를 영어로 제출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. 매일 영어로 된 수학과 컴퓨터과학 문제를 푸는 것도 지쳤다. 그렇게 한 달 동안 시험 응시 메일이 오지 않아 전전긍긍하다가 드디어 기회가 왔다. 준비한 만큼 많은 문제를 풀었고, 서류 탈락은 피했기에 후회는 없을 것 같다.
마지막 분기에는 루틴이 다소 소홀 해졌지만, 1년 넘게 기술사 공부에 매진했던 시간 덕분에 기술을 보는 눈이 열렸다. 이는 사내 기술과 거버넌스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, 도메인 지식과 밸류체인이 머리 속에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어 투자에도 많은 통찰을 주었다.
연말에는 드디어 아랍에미리트를 다시 방문했다. 신혼여행 중 "3일이나 여기서 보내느니 그리스 북부를 더 둘러보자"고 투덜댔던 내가, 여행 일정의 일부였던 이곳에 완전히 매료되었다. 2년 만에 다시 찾은 이곳은 여전히 안전하고, 차별 없으며, 모든 문화가 어우러진 곳이었다.
신년을 맞이하기 직전, 새로운 롤모델도 만날 수 있었다. 20년 전, 31살에 인도에서 아랍에미리트로 이직한 엔지니어는 지금은 팀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. UAE를 바라보는 관점이 나와 같아 비자가 있는지 물었고, 그는 2년 전에 받은 골드 비자를 보여주었다. 그 비자는 노동자로서 월 1,000만 원을 비과세로 번다는 걸 증명하기에, 내 꿈이 눈앞에 있다고 말했다. 그렇게 인도, 이집트 출신의 케미컬 엔지니어들과 이야기하다가 루마니아 출신 일본 은행 직원과 그의 남편인 벨기에인을 만났다. 버즈 알 아랍 앞에서 같이 잊지 못할 셀피도 남겼다.
2025년은 2024년의 결과를 마주할 한 해이기에 기대가 되면서도, 실패로 인해 과정이 더 길어질까 두렵기도 하다. 모든 일은 준비되면 성취할 수 있고, 미리 예비되지 않으면 실패한다. 열매를 맺기 위해 誠을 다하자.